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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기부로 달라졌어요_가락고 서범석군

 

“축구장에서 밝은 미소 되찾았어요”

[교육기부로 달라졌어요]서범석(가락고 3)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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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락고등학교의 운동장. 푸른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장 한편에서 고등학생들이 공을 차며 축구 연습을 하고 있다. 6개월 전만해도 서범석(19)군 역시 저 곳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편, 장애인 축구단 쪽에 서 있다.

 

지난 12월 4일 토요일 오후 서군과 서군의 어머니 김경옥(49세)씨를 가락고 인근에서 만났다. 뇌경색으로 몸의 오른쪽이 마비되고 말도 잘 못하게 된 범석이가 왼손으로 수첩에 단어를 적으면 그에 대해 어머니가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은 한 달에 한 번, 가락고 여자 스포츠클럽 ‘발모아축구단’과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구성된 ‘G7축구단’의 시합이 있는 날이었다.

 

범석이는 사고 전 가락고 남자 스포츠클럽 축구팀 선수로 뛰던 당시 연예인 축구단과 연습경기를 하던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이돌 멤버 시아준수와 범석이가 볼을 겨루고 있는 사진은 한 일간지 사이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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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좋아해서 가락고 남자 스포츠클럽 축구선수로 활동했어요. 토요일이면 장애인 선수들이 학교에 와서 축구경기를 하는 것을 종종 보기도 했지만, 그땐 나와 상관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죠.”

 

범석이가 갑자기 쓰러진 것은 지난 6월이었다. 범석이는 여느 때처럼 다른 학생들과 함께 축구공을 주고받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훈련 중에 머리에 공을 몇 번 맞았는데 갑자기 어지러워져 푹 주저앉았다. 그렇게 병원에 실려 갔고 병명은 뇌경색이었다.

 

학교 스포츠클럽 지도교사인 이정미 교사와 양호교사의 빠른 응급처치·병원이송으로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후유증이 남았다. 중환자실에서 열흘을 보낸 뒤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나서도 범석이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몸 오른쪽이 다 마비되어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게 된 것이다.

 

축구를 좋아하고 활동적이던 고등학생 범석이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병실에서 TV를 보다가 좋아하는 스포츠가 나와도 ‘아직 잘 서지도 못하는 처지에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짜증만 났다. 사고 전 94kg의 거구였던 몸은 체중이 15kg이나 줄었다. 이정미 교사가 병원에 꾸준히 찾아와 범석이에게 장애인 축구단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축구를 하라고 권했지만, 그 좋아하던 축구 얘기도 의미 없게 느껴지기만 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이 몸으로 축구를 어떻게 하나’ 싶어서였다.

 

그러나 범석이를 위한 응원은 계속됐다. 이 교사와 범석이 친구들은 빨리 나으라는 응원을 보냈고, 장애인 축구단 선수들도 힘내라는 격려 동영상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 교사의 설득에 못 이겨 범석이는 잠깐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지난 8월 발모아축구단과 G7축구단의 경기를 보러 갔다. 어머니 김씨는 “그날 축구장에서 범석이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웃는 걸 봤다”고 말했다. 범석이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뛰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장애를 갖게 된 이유도, 시기도 모두 다른 선수들이지만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경기에 임하는 모습은 참 멋졌다. 그들에게서 범석이는 희망을 발견했다.

 

G7축구단은 한 달에 한 번, 발모아축구단과 함께 훈련하고 경기를 한다. 뇌성마비 관련 장애인으로 구성된 G7축구단은 장애인 축구 국가대표가 4명이나 소속돼 있을 정도로 실력이 좋은 팀이다. 그러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축구장을 대여해주지 않는 곳이 많아 연습장소 확보에 힘들어하곤 했다. 그런 G7축구단을 위해 발모아축구단이 교육기부 형태로 가락고 축구장에서 장애인 선수들과 연습경기를 하는 것이다.

 

범석이는 아직 국립재활원에 입원중이다. 주말마다 집에 와서 사회 적응 훈련을 하는데, G7축구팀 경기가 있는 주말에는 축구장에 나온다.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범석이는 축구장으로 향했다.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학교에 도착한 범석이는 형광색 축구화로 갈아 신고 축구장에 들어섰다. G7축구단의 선수들은 범석이와 함께 공을 차고 훈련하면서 몸이 불편해도 축구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범석이가 아직 G7축구단의 정식 멤버는 아니지만 선수들은 범석이에게 축구장에 설 기회를 주고 있다. 지난 4월에만 해도 가락고 스포츠클럽 축구팀의 편에서 G7축구단과 시합을 했지만 이제는 G7축구단의 편에 서게 된 것이다.

 

축구장에 선 범석이는 아픈 것을 잊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진다. 지난 8월 처음 왔을 때는 축구장 한가운데에 멀뚱히 서서 자신에게 오는 공만 겨우 차내던 범석이가 이제는 공을 따라서 부지런히 걷기도 한다. 눈으로 공을 쫓으며 걸음을 옮기다가 자신에게 공이 오면 재빠르게 공을 몰아간다.

 

“아휴, 조심해야지. 저러다 넘어지면 재활하기 힘든데….”

 

김씨는 범석이가 축구를 하다가 넘어져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지만, 축구장에 선 범석이의 밝은 표정을 보면 만류할 수가 없다. 안쓰러움과 응원이 뒤섞인 눈빛으로 아들의 움직임을 바라본다.

 

“저렇게 열심히 축구를 한 날 저녁이면 범석이가 몸이 아파서 힘들어해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저렇게 좋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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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아쉬운 것은 범석이의 치료비를 전혀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 스포츠클럽 활동 중에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업이 끝난 후 일어난 일이라는 이유로 학교안전공제회는 범석이의 치료비를 보상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내년 6월 정도까지는 국립재활원에 입원한 상태로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병원비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김씨는 사고 후 웃음을 잃었던 범석이가 축구를 하며 다시 활짝 웃게 되고 새롭게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모습에 위로를 받는다고 전했다. 김씨는 “범석이가 축구를 다시 하면서 삶의 의미와 목표를 되찾고 희망적으로 변했다”면서 “좋아하는 축구를 통해 재활을 할 수 있으니 참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범석이가 축구 교육기부를 통해 재활을 할 수 있도록 계속 지도해주고 있다. G7축구단 감독은 범석이가 재활을 잘 해서 축구단 정식 멤버가 되면 장학금을 주겠노라며 격려한다. G7축구단 선수들도 “걷는 게 많이 좋아졌다”, “더 나아질 거다”며 희망을 준다.

 

이들 덕분에 범석이도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원래 꿈은 영어교사였지만 이제는 특수교사로 진로를 바꿨다. 비록 올해 수능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시험만 겨우 치르고 왔지만 내년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특수교육과에 지원할 생각이다. 또 재활치료를 잘 받고 G7축구단에 정식으로 입단해 장애인 축구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목표도 갖게 됐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범석이는 “보상금이 나와서 부모님의 치료비 부담을 덜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리고는 종이에 네 글자를 꾹꾹 눌러 적었다. “할 수 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며 범석이는 환하게 웃었다.